북한을 알아보자. -1 – 김일성의 부 김형직 편
북한을 알아보자.
남한과 북한
세계에서 얼마 안되는 분단 국가이자,
아직도 “휴전” 중이며
그 시작부터
정치적으로
가고자 하는
방향이 서로 너무나 달랐고
그로 인해 만들어진 결과가
이제는 얼마나 다른지를 배우기 위한
교보재로도 쓰이는 두 국가
남한과 북한 중
과연 북한의 시작은 어땠을까?
한번 알아봅시다.
대한민국인의 입장에서 쓰는 글이라,
북한의 자료와는
그 방향이 완벽히 반대일 수 있습니다.
감안하시길 바라며 저는 북한의 자료를
반박하는 형태로 글을 써 나갈 계획입니다.
우선 그 시작을 알려면
북한의 시작 김일성
그의 아버지에 대해 알고 넘어가야 합니다.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
그는 누구인가?
현재 북한의 김정은의 할아버지인 김일성은
한반도가 반으로 나뉘게 되는
이념전쟁을 일으키고
그렇게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분단이 되었습니다.
그럼 김일성을 알아보기 전에
그의 아버지인
김형직(金亨稷, 1894~1926)
을 먼저 알아 봅시다.
그는
평안남도 출신으로,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들이 설립한 평양의 숭실학교 (Soongsil Academy)에
다니며 공부합니다.
그리고 독실한 기독교 집안의
강반석을 만나 결혼해
아들 김성주 ( 후에 김일성으로 개명 ) 를 얻게 됩니다.
김일성의 모 강반석은
성경속에서 쓰이는 단어인 반석을 사용한 이름이며
그때 당시로써는
매우 드문 경우였습니다.
물론 반석이라는 말은 기독교가 들어오기전부터
쓰여진 한자어이지만
이름에 사용하는 경우는 없었다고 합니다.
이후 간단한 침술과 약초 치료를 하며
주민들을 도우며 살던 그였지만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항일 활동에 참여했으며,
관련 활동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구금된 기록이 있습니다.
즉 그가 기독교인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확실히는 모르겠으나,
독립운동가였던 것은 확실한 것이지요.
1919년 3·1운동에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후 가족과 함께 만주로 이주했습니다.
그후 그는
1926년 6월 5일 중국 지린성 일대에서 사망했으며,
당시 나이는 31세였습니다.
김형직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사망하게 됩니다.
공산주의자들의 테러등을 지켜보며
그들에게 심한 반감을 가지고 있던 그는
평소 공산주의자들은 치료를 거부하는 등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들이
결국 공산주의자들에게 원한을 사게 되어
죽임을 당하게 되지요.
김형직은
자신의 아들이 공산주의자가 되어
수백만의 인권을 유린할 줄 알았을까요?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김형직 그 자체는
훌륭한 인생을 남긴 청년이라 해석해도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잠깐만,
우리가 언제 김일성의
“김” 씨가 어디 김씨인가 궁금해 했던 적이 있을까요?
저기 어디 뭐 함겸남도 김씨 이런거겠지.
하고 넘어 갔을지도 모릅니다.
이거 김씨 족보를 한번 찾아봐야겠는데요?
아 서양권 독자가 있다면
잠시 설명 드리겠습니다
족보란?
족보는 한 집안의 조상부터 후손까지 혈통과 가족 관계를 기록한 문서입니다.
족보의 예

『경주김씨 판도판서공파 족보목판(慶州金氏版圖判書公派族譜木板)』. [사진 제공 – 이양재]
초기에는 이렇게 목각판에
족보를 적어 나갔습니다.
누구누구는 누구누구와 결혼하여 아들 누구누구를 낳고 딸은 누구누구이며
00 년 사망한다.
그 누구누구의 아들 누구누구는 결혼하여 누구누구를 낳고
00 년 사망한다.
또 그 누구누구의 …
이런식으로 같은 핏줄인 사람의 인생을 꾸준히 기록해
그 흐름을
글로써 증명,
후대에 남겨 옵니다.

– ‘진양하씨세보'(1606) /한국족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 –
위의 족보는 하씨 의 족보입니다
현재 김일성의 김씨 족보와는 전혀 무관하며
내용만을 사용,
이해를 돕기 위해 가지고 왔음을 알립니다.
보이시나요? 왼쪽을 보면 한자를 모르더라도
子 가 반복 되는게 보이실 겁니다.
子는 아들을 의미합니다.
과거 대한민국 역시 한자를 썼고
이는 족보에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즉 수백년간 한 일족의 흐름을
적고 유지해
후대에 까지 이어 지게 하는
이제는 마치 문화재, 유산같이
여겨지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과거에는 금고같은 시스템도 없었고
치안같은건 기대 조차 할 수 없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오래된 족보를 가지고 있는 성씨는
나름의 능력있는 핏줄이었음을
의미하기도 했지요.
당장에 먹고 살기 힘들고 이사 다니기 바쁘다면
저런 약하디 약한 종이책이 수백년간
이어져 내려오기란 쉽지 않을테니까요.
뭐 현대에 와서는
족보가 갖은 가치가 예전만 못한 것도 사실이긴 합니다.
그럼 다시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으로 돌아와서
그럼 김정은 김정일 김일성 의 뿌리
김형직은 어디 김씨 일까요?
이는
전주 김씨냐 선산 김씨냐를 놓고 말이 많습니다.
그리고 이 전주나 선산이나 현재
대한민국의 지역이므로
족보를 관리하는 측에
직접적으로 물어볼 수도 있고
물어본 자료도 기사로 확인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전주김씨나 선산김씨나
그 사람들은
김일성은 우리 김씨가 아닙니다 라고 답했다는 것이지요.
솔직히 맞다 그래도
그래!! 우리 김씨 일가다
할 순 없잖아요?
수백년 이어져 온 우리 일가에서
전쟁을 일으키고
수십년간
국민들을 세뇌 시키면서
본인 일가는 샥스핀,케비어를 간식처럼 먹어대고
기쁨조라는 여성 조직을 만들어 본인들의
성적 욕구를 채우는 데 희생시키고,
국민들은 나무뿌리조차 먹지 못해
굶어 죽게 만드는
그런 독재자가 나왔다 라고 어찌 인정합니까.
뭐 지금 당장은
못된 왕이라도 어쨋든 왕이란 것은
나름의 자랑거리 아닌가?
싶을지도 모르지만
족보는 앞으로도 전해질 것이고
후대에는 그 성씨의 정체성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하니 인정하기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들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가지요.
저라도 같은 행동을 할 것 같네요.
그럼 아무 문제 없는 김형직 씨는 이제 그만
놓아주고
2 부 부터는 본격적으로
김일성 김정일
그리고 북한의 만행에 대해
다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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